2010-02-05 오후 12:35:56 게재

착하게 살자
김이경 (소설가·독서평론가)

착하게 살자.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게 꿈이라니까 누구는 조폭이냐며 웃더군요.
조폭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세상을 가장 사납게 살아온 그들이야말로 착하게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일인지 잘 알 것도 같습니다.
착하게 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흔히 무골호인, 예스맨을 착하다고들 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 하면 안 될 때 ‘예’ 하는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와 비리가 생겨났는지요.
예스맨은 편한 사람은 될지언정 착한 사람은 못 됩니다. 무능하고 무사안일한 사람 역시 착한 사람은 아닙니다. 누군가 제 몫의 일을 안 하면 다른 누군가가 고생을 하는 게 세상 이치니까요.
착하려면 무엇보다 눈앞의 인연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인연까지 배려하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겨울에 반팔 옷을 입고 사는 것은 착한 일이 아닙니다.
지나친 난방은 지구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북극곰을 비롯한 뭇 생명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난방비 상승을 부추겨 가난한 이웃의 겨울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것은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연결되어 있고, 나는 그 연쇄의 한 고리로 그 모든 것 ‘덕분에’ 산다는 마음가짐 없이는 착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서 지진 참사가 발생하자 전 세계가 앞다퉈 구호에 나섰습니다. 아이티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며 저금통을 털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는 마음, 세상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낳은 선행입니다.

아이티 위해 저금통 터는 아이들
하지만 값싼 동정은 받는 이를 더 아프게도 합니다. 아이티인들의 고통과 슬픔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그들의 비참과 무질서를 강조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에서는 아이티 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오만이 읽힙니다.
더구나 미군이 대통령궁과 공항을 장악하고 이방의 병사가 총을 들고 아이티 인들을 위협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나라라 그렇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아이티인이 아닙니다.
아이티는 1804년 서반구 최초의 노예해방 혁명으로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입니다. 지금은 진흙을 구워먹을 만큼 가난하지만, 1789년 당시엔 프랑스 교역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풍요로운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독립의 대가로 프랑스에 1억5000만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하면서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지배와 세습독재, 군부쿠데타가 이어지면서 아이티인들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티 민중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외세를 몰아내고 독재와 군부를 무너뜨렸으며,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이 미국의 개입으로 망명한 뒤에도 민주정부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 사상 최악의 지진으로 고통 받는 아이티는, 무기력한 빈곤국 가가 아니라 이처럼 역동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노예의 풍요를 거부하고 가난한 주인이 되기를 선택한 자존심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 역사와 자부심을 무시한 채 돈을 앞세워 그들을 동정한다면,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모욕이며 나눔이 아니라 동냥입니다.
남아공에 망명중인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가난한 휴머니즘’이란 책에서, 원조를 내세워 내정간섭을 하는 국제사회를 비판하고, 자신들은 ‘경제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에 의지해 ‘존엄한 가난’으로 가는 길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보답 바라면 선행 아닌 ‘사업’
참사가 일어나자 그는 “고통을 나누고 품위 있게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국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은 반대했습니다. 정쟁을 부추긴다는 게 이유지만, 따지고 보면 그 또한 아이티인들의 몫이며 그들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불행한 이들을 돕는 것은 선(善)이지만, 그 도움을 빌미로 보답을 바라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니라 사업입니다. 남을 돕는다, 착한 일을 한다면서 사실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티를 돌아보다가 문득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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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띠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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